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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무엇이 나를 북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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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연주에 있어서 북채를 돌리는 것은 마지막 연주를 화려하게 태우는 불꽃이라고 생각한다. 연주의 가장 화려함,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역경, 그것이 이번 작품의 연화(蓮花)이다.

 어느날 북채를 돌리며 채발림을 연습하던 중에 북채가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잔잔한 연못 위에 떠 있는 수련(睡蓮)처럼 신비롭게 보여졌다. 일반적인 채발림은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면서 연주하기 때문에 꽃의 이미지는 짧았고 단발적이었다. 회전의 길이를 더 오래 지속 시켜서 꽃이라는 이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듯 연화는 꽃의 모습에 흥미를 느껴 오른손으로 채발림을 지속시키고 왼손으로 리듬 을 연주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구성한 작품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린싹이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세상에 나와 혹한의 비바람을 이겨내는 모습이 지난날 성공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나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3년 남산 국악당에서 올린 정규하 타악공연 ‘관동별곡(關東別曲)’은 “한국전쟁으로 분단된 관동 8경을 북의 울림으로 넘나든다”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16개의 심벌(Cym-bal), 16개의 모듬북, 16개의 효과타악기로 만들어진 관동별곡의 악기는 북이라는 전통악기에 변화를 주어 새로움을 시도한 공연이었다. 화려한 모습과

‘최초, 최대’라는 타이틀로 많은 제작비를 들여 악기를 제작하였다. 인도 신화 속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아수라’와 같은 화려한 모습이 이번 공연으로 명성과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적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 아수라(阿修羅)였다.

 

 형식 속에 내용을 억지로 구겨 넣는 실수들은 공연 10분 전까지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했다. ‘급하면 사람이 제 발에 넘어진다고 했던가?’ 일이 조금씩 어긋날수록 조급함 속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결국 나는 내 발에 걸려 넘어졌다. 나의 꽃은 열매 없이 떨어졌으며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오랫동안 스스로를 책망하였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후회스럽고 회피하고 싶은 기억을 다시 꺼내 든 이유는 분명하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에는 실책과 실패의 교훈이 내 삶의 무게보다도 무거웠음을 인정하고 이번 공연을 통해 삶과 예술에 대한 진정한 꽃의 의미를 찾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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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북 

 이매방 명인의 승무 북가락은 한국 장단의 특징인 기경결해(起輕結解)와 대삼소삼(大三小三)이 작품 속에 잘 녹아있다.

여기에 깊이 있는 몸동작과 호흡, 그리고 다양한 채발림은 연주의 절정을 미적 시각으로 끌어 올리며 사람들을 압도하는

힘을 발산한다.

 나 또한 북을 처음 배울 때 이매방류 특유의 매끄러운 장단 구성과 채발림에 매료되어 연습에 빠져들곤 했다. 승무북 가락 특유의 온유함과 박진감은 다른 타악 작품에서 느끼지 못한 경이로움을 안겨주었고 마치 계절의 변화무쌍함과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이처럼 대가의 완성된 작품을 수없이 되새기며 반복 연습하는 과정속에서 나는 명인이 평생을 걸쳐 만들어놓은 작품을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내 몸에 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노력하면 이매방 명인처럼 승무북의 멋스러움을 자기 옷 마냥 걸칠 수 있었고 장단의 구성은 물론이거니와 호흡과 동작. 특히 채발림의 화려함까지 이매방 선생과 같은 모습으로 북을 연주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심장을 떨리게 했고 나의 연주로 관객의 심장을 울리게 했던 그 북소리가 사실 나의 북이 아닌, 많은 연주자들이 피나는 노력 끝에 얻어진 연주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이것은 나에게 단순히 북만 잘 치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심적 갈등과 혼란에 빠져들게 했다.

 

 더 이상 나의 심장은 떨리지도 울리지도 않았지만 다행히 내재 된 욕구 불만은 나의 북을 찾아가기 위한 자각(自覺)의 신호이자 시발점이 되었다. ‘북이란 무엇인지’, ‘나는 왜 북을 치는지’, ‘북을 통해 보여지는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은 이매방의 북이 아닌 정규하의 북, 씨앗을 뚫고 세상에 나와 혹한의 비바람을 맞으며 반평생 북을 품고 살아 온 내 인생의 연화를 찾고자 하는 염원(念願)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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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떨림

  내가 북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떨린다’인데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북소리를 따라가던 심장이 어느 순간

전율해 버렸다’이다. 가죽과 나무만으로 만들어진 심플하고 단순한 동양의 악기가 심장을 울린다는 것은 서양타악기를

전공한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하지만 인간의 심장처럼 통(Drum)이 둥글게 생긴 것과 ‘쿵’이라는 소리가 닮았다는 것만으로 ‘떨림’을 이해하고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나의 유아기적 호기심은 사물놀이와 서양타악기에 비해 북에 대한 기초원리와 분석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양 타악 연주곡과 이매방 승무 북가락, 사물놀이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얻었던 내용들 또한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리듬의 테크닉과 작품 구성에 대한 전문적 자료에 비해 북이 왜 심장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떨림을 선사하는지에 대한 원론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내용의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한국의 혼합박장단으로 작품을 구상하던 중 복잡한 박자로 구성된 장단들을 관객들은 ‘어떻게 듣고 이해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주자들은 복잡한 박자로 구성된 혼합박 장단들을 반복 연습함으로서 그 장단이

설상 어렵다고 하더라도 박이 처음으로 돌아오는 정박의 위치를 알기 때문에 첫 박을 찾아갈 수 있지만 관객들은 박자와 음표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박자와 장단을 듣고 따라가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2017년 수작(手作)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주하는 사람의 귀와 듣는 관객의 귀는 ‘다를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심장운동 즉, 이완과 수축이라는 두 번의 혈액운동이 리듬의 2분 박의 원리와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음악의 박자표기가 정박과 엇박의 2분박(심장의 박동)으로 표현되지 않은 이유는 음악연주의 편이와 박자의 일정한 순서를 나타내기 위함이고 그 말인즉, 정박과 엇박이라는 개념으로 북소리의 진동을 인지하는 심장(또는 뇌)의 박은 음악적 음표와 박자의 순서 없이도 자연 그대의 날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연주자의 박자 개념과 소리를 듣는 관객(심장의 박)의 박자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심장의 박동수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정박으로 흘러가는 심장의 박동수가 북의 정박과 엇박의 박동수와 교차 되면서 북소리를 듣는 인간의 심장에 긴장(tension)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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